향불이 타고 있는 홍등가_by 성지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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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불이 타고 있는 홍등가

일본인들은 선이 가늘고 섬세한 사람들이다. 20여년 전, 일본 생활을 시작하면서
동네 가게에 우유 배달을  부탁한 적이 있다. 그 여주인은 열  번도 넘게 허리를
굽히더니 비누 한 개와 수건 한 장을 주면서 앞으로 많이 이용해 달라는 부탁을
잊지 않았다.  그런데 사흘이 지나도 우유는  감감 무소식이었다. 가게에 전화를
하자 그 아주머니는  화들짝 놀라면서 <미안합니다>를 연발하더니 득달같이 우
유를 가져왔다. 10엔짜리 동전  한닢도 함께. 웬 돈이냐는 표정에 그 아주머니는
미안스럽기 이를 데  없다는 듯이 머리를 조아리며 통화 요금이라고  했다. 그렇
지, 3분 이내의 공중전화  통화요금은 10엔이었다. 일본인들은 상식을 넘는 선물
이나 사례를 보내는 것을 터부시한다. <피라미  한 마리를 도미로 갚는다>는 격
언은 분수를  넘는 선물에 대한  심한 욕이다. 일본식당에서  종업원이 실수하여
손님 바지에  물을 떨어뜨리는 경우,  대부분 계산대의 아가씨가  천엔짜리 지폐
한 장이 든 예쁜  봉투를 내밀며 실수에 대한 사과를 한다,  천엔은 다리미질 값
이란다. <일전을  우습게 아는 사람은 일전  때문에 울게 된다>는  일본 속담도
얻어듣게 된다. 일본인들의 시간 관념 역시 공중 전화료를 따져 주는 식이다. 강
의 시간을 8시 35분, 끝자리 5분을 굳이  붙여야 안심이 되는 사람들이다. 성(性)
을 관리하는  일본 공창(公娼)의 역사는 17세기부터  시작된다. 창녀촌이 당국의
정식 허가를 받아 생겼다는 사실은  특정 지역에 남자에 비해 여자의 수가 모자
랐다는 반증이다. 공창과 함께  사창(私娼)도 슬그머니 생겨 사회적 문제인 남녀
의 성비 해결에  기여하게 되었다. 문제는 일시에 객들이 들이닥쳤을  때 유녀가
부족한 경우였다. 시계가 있으면 시간을 정하면  간단했겠지만 시계가 없던 시절
이었다. 또한  하룻밤 즐기는 것이 아니라  짬을 내서 잠깐 여자를  살 경우에도
그 시간의 길이를 측정하는  데 신경이 쓰이지 않을 수 없었다.   횟수로 규정을
하더라도 손님과 포주 사이에는 다툼의 소지가  있기 마련이다. 궁하면 통한다든
가, 절에서 공양드릴 때 쓰는 선향(線香)에 퍼뜩  생각이 미쳤다. 제사를 지낼 때
나 상가에서는 지금도 향불을 피우고 있지  않은가. 일본인들은 이것을 향시계로
사용했다. 기다란 향 한 개비가 타는 시간이  어림잡아 15분에서 20분 정도 되었
다. 한 시간쯤 놀고 싶으면 세 개를 사고, 손님이 많을 경우에는 한두 개비의 시
간만 즐기도록 제한을  했다. 향불이 타고 있는 방에서 도원경으로  빠져들고 있
는 두 남녀의 모습과 밖에서  향을 들고 음탕한 상상을 하면서 순서를 기다리는
남자들의 어슬렁거리는 광경은  상상만 해도 재미있지 않은가.  조선에서도 향을
일본 못지않게 많이 사용하였고  모래시계나 해시계를 만들 정도로 시간 관념도
뚜렷했지만 시간을 쪼개는 습관은, 더욱이 여자를  사는데 사용했다는 기록은 아
직 못 보았다. 요즈음 사우나룸에서 볼 수  있는 모래시계의 변형을 사용할 정도
로 시간에 째째하지 않았다.  남아 도는 것이 시간이었으리라. 같은 동양 문화권
인 일본은 17세기 초에 이미  시간을 20분 단위 정도로 쪼개는 기발한 아이디어
를 사용했다. 우리는 그들을 속좁은 좁쌀쟁이로  여기면서 모름지기 사내는 통이
이쯤은 되어야지 하고, 에헴 했더란다.  도량이 넓고 통이 큰 것이 무슨 흉이 되
겠는가마는 꼼꼼하지 못하고 대충대충, 그리고 적당히  해치워 버리는 병폐가 너
무 크다는 점을  지적하고 싶을 뿐이다. 한국인과 일본인의 시간  관념의 차이는
농경사회에는 그렇게 두드러지지  않았다. 한나절, 반나절로 시간을 계산해도 무
방했지만, 산업시대로 들어서면서부터는  그 차이가 두드러지고 결과는  전혀 다
르게 나타났다. 일본인의  신경질적인 섬세함과 시간 관념은  산업화의 성공으로
연결되는 정밀성의 감각이다.  1780년대에 시작된 서구의 산업화  물결이 메이지
유신이 일어나던  1860년대에 일본에  밀어닥쳤다. 산업화에 성공하기  위해서는
질 좋고 값 싼 물건을 남보다 먼저 만들어 해외시장에 팔아 넘겨다 했는데 산업
화와 일본의 섬세함이 맞아 떨어지게 되었다.  매사를 꼼꼼하게 챙기고 정확성과
정밀성을 중요시하는 국민성이 일본의 산업화를 서양의 절반의 시간으로 가능케
했다. 제조품의 불량  비율이 우리 나라는 4퍼센트인데 비해 우리  나라는 TV를
100만 대 생산하면  4만대가 불량품이지만 일본은 한 대도 없다는  계산이다. 시
간과 자원의 엄청난 낭비이다.  이같은 차이는 어제, 오늘에 생겨난 것이 아니라
는 점을 인식해야 한다.  1995년 7월, 미국의 권위 있는 소비자 만족도 조사기관
인 JD 파워사가 공개한 브랜드별 소비자  만족도 순위에서 한국산 자동차는 200
점 만점에 105점으로 33위를 기록하였다. 반면에  일본의 도요타 레석스는 173점
으로 1위, 닛산 인피나티는 172점으로 2위, 혼다는 149점으로 8위를 각각 차지하
였다는 것은  우리에게 의미하는 바가  크다. 다행히 미래사회는  단순히 양질의
제품을 대량생산하여 승부를 거는 시대라기보다 창의성과 개성이 중요한 요인으
로 작용하는 정보화  시대가 된다고 한다. 일본인에 비해 개성이  뛰어난 우리로
서는 시대의 주인공으로  겨루어 볼 만한 일이다. 그러나 일본인도  만만치 않은
존재라는 인식을 갖고  완벽을 추구하는 그들의 자세를 눈여겨 볼  필요가 있다.
조선이 일본의 물량 공세에 의해  36년 간의 치욕을 당한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은 공부 부족에 기인한 질의 패배였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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