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족한 관계_by 성지식
"만족한 관계"
일상생활에 찌든 남자가 그다지 이렇다 할 느낌도 없는데, 그냥 여자를 만나서 섹스를 즐긴다면,
무엇 때문에 그런 말도 안되는 무의미한 섹스를 하게 되는 것일까 하고 생각하는 분들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주목해야 할 사실은 삶에 있어서 윤활유와 같은 구실을 하는 섹스가 때로는 스트레스에 대한 해소책으로 사용될 수 있다는 사실이다.
스트레스를 풀기 위한 방법으로 섹스를 나눈다는 사실을 드러내놓고 주장하거나 강조되고 있지는 않지만 그러나 하나의 상식으로써 일반인들의 뇌리에 자리잡고 있으리라 생각된다.
예를들어 스트레스에 짓눌린 청소년들이 포르노 테이프나 그림을 찾아 돌아다니는 것이나 지금은 금지되었지만 얼마 전까지만 하여도 노총각들이 스트레스를 풀기 위한다는 구실로 한두달에 한 번씩 성매매업소를 찾아가곤 했지를 않는가.
이러한 세태는 여성들이라 해서 절대 예외일 수 없다. 물론 방법은 좀 틀리지만 어떤 여성들은 이렇게 말을 한다. "나는 아직까지 남자와 잔 적은 없다." 고,
그러나 마스터 베이션은 많이 한다. 포르노도 많이 보는데 그 이유는 마스터 베이션을 안하면 호르몬 배출이 적절하게 이루어지지 않아 미용에도 좋지않고 정신건강에도 해롭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 습관이 오래 되다 보니 굳이 남자를 성적으로 밝힐 이유를 못 느끼게 된다. 남자와 섹스해 봤자 어떤 의미에서는 마스터 베이션만 못하고 여러가지로 성가시기만 하다.
그렇게 해서 그녀가 내린 결론이란 "나는 남자하고 섹스는 않고 그저 얘기만 하는 것으로도 족하다."는 것이다.
이 이야기는 참 그럴 듯하게 들릴 수 있다. 성욕을 해결하지 못해 스트레스에 욕구불만에 찌들려 있는 여성들에 비하면 오히려 이런 여성일수록 훨씬 더 생기있게 보이기 때문이다.
결론은 불만족스러운 성관계가 히스테리를 발생시킨다는 것이다. 만일 그렇다면 섹스는 스트레스를 풀거나 또는 미용이나 정신건강에 좋다는 말인데 이러한 것을 논리적으로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히스테리의 원인으로는 성적 욕구가 충족되지 않아서 그렇다는 학설이 있다. 히스테리(hystery)의 어원이 자궁(hystero)에서 비롯된 것과 같이 성욕의 적절한 배설이 이루어지지 않았을 때 히스테리가 발생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가설에 착안하여 한때는 마스터 베이션 등의 방법으로 성욕을 배출하는 것이 여러가지로 도움이 된다는 말이 있었다. 그런데 마스터 베이션이 도움이 된다고 확실하게 주장할 수 있을까.
유명한 정신 분석학자인 프로이드에 따르면 성에너지 즉 "리비도"의 사용 가능량은 한정되어 있다고 한다. 아무리 스트레스가 있다고 하더라도 이미 한정된 리비도를 무작정 써버린다면 정말 말도 안되는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리비도를 무한하게 쓰는 것이 아니고 앞의 여자와 같이 스스로 안배해서 적절하게 쓴다면 섹스가 스트레스를 푸는 데 도움을 줄 수도 있지 않을까.
사회적으로는 아무도 섹스가 스트레스를 푸는 데 도움이 된다고 강조하거나 가르치지는 않지만 사람들은 때가 되면 스스로 깨우쳐서 스트레스을 푼다. 가르쳐 주지 않더라도 터득하는 것이 섹스이고 섹스의 효능이기 때문일 것이다.
인간들의 생애에서 가장 큰 스트레스는 역시 종족 보존의 문제일 것이다. 사람에게 가장 중요한 본능이 있다면 다름 아닌 생존및 번식의 본능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실제로 스트레스와 섹스는 어떤 관계에 있을까. 우선 사람들이 어떤 때에 가장 스트레스를 크게 받는 지를 생각해 보자.
사람은 자기 생명을 소중히 해서 자기와 똑같은 생명체를 창조하여 후세에 남길 책임이 있다. 이 책임은 태고 때부터 내려온 것으로 사람의 모든 본능에 우선한다.
사람이 이 세상에 태어난 가장 큰 이유는 번식을 하기 위해서이다. 그렇지 않았다면 사람은 이 험난한 자연계에서 만물의 영장으로 지금까지 생존하지 못했을 것이다.
3~5억개의 정자 중에서 일등으로 난자에 골인하여 인간이 된 것은 생명력이 강성한 존재를 재탄생 시키고자 위함이다. 물론 난자라고 해서 꼭 일등으로 골인한 정자에게 문을 열어주지는 않았다. 최종 선택권은 난자에게 있었다.
아마도 3~5억개의 정자들과의 치열한 각축속에 죽음의 랠리를 펼치면서 속으로 이렇게 부르짖었을 지도 모른다. 만일 내게 기회가 주어진다면 무조건 생명을 풍요롭게 하는 일에 열중하겠다. 라고,
어떻게 귀하게 얻은 생명인데 나하나로 이 생명을 끝내고 싶겠는가. 어떤 사람이 아무리 위대하고 아무리 훌륭한 일을 했다고 하더라도 그의 내면에서 그림자처럼 떠나지 않는 것은 자식에 대한 생각일 것이다.
자식이 위험에 처했을 때 자기 몸을 돌보지 않고 위험을 가로막는 부모들은 다름 아닌 이 생명을 재탄생 시키는 번식의 본능에 따라서 충실하게 행동하는 것이 아닌가.
따라서 사람들에게 있어서 가장 큰 스트레스는 당연히 번식에 대한 스트레스라고 본다. 모든 인간들은 번식, 즉 종족보존의 스트레스에 쫓기며 살아가는 것이다.
이때문에 인간들이 성인이 되면서부터 끊임없이 성욕에 시달리고 갈등을 느끼다가 심지어는 그 스트레스에 못 이겨 현 사회의 질서조차 무시하며 성범죄를 저지르는 경우도 생긴다.
다음으로 사람들이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 것은 공격을 당했을 때이다. 타인이 나만의 공간, 내가 편안하게 유하고 있는 공간을인정하지 않고 공격을 했을 때 사람들은 분노에 사로잡히면서 엄청난 스트레스를 받게되는 것이다.
이때 사람의 본성은 자기가 당한 것 처럼 자신도 남들에게 똑같은 공격을 퍼붓고 싶어진다. 이는 지금까지 생존시켜준 죽음의 본능으로부터 나를 지키기 위하여 나의 공간을 침범하는 타인을 해치는 결과를 낳는다.
그러나 현대 사회에 있어서 이 죽음의 본능은 극도로 제한받아 왔다. 아무리 상대가 나를 공격해 오더라도 내가 상대를 원시적으로 공격하는 일은 현행법상 용납되지 않는 것이다.
그런데 이를 상징적으로 해결해 주는 것이 있으니 이것이 바로 섹스이다. 섹스의 행위 속에는 사랑 이외에 상대를 지배하고 파괴하는 의미까지 내포되어 있기 때문이다.
원시 시대에서 다른 부족과의 싸움에서 승리를 얻었을 때 가장 먼저 취하는 것이 섹스이다. 아마도 사람들이 섹스를 통해 스트레스를 풀려고 하는 것은 이처럼 섹스가 상대를 지배하는 태곳적 본능으로 스트레스를 해결해 주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현대 사회에서 섹스를 스트레스 해소 수단으로 권장하지 못하는 것은 기존에 유지되고 있는 규범이나 사회윤리 때문이다. 현대 사회가 원시 사회와 엄연히 구분되어야 하는 이유이다.
최근 들어서 컴퓨터산업이 발전하면서 FA는 물론 OA화가 급속도로 진행중에 있다. 이로 인하여 새롭게 생겨난 이른바 "테크노 스트레스"라는게 비즈니스맨은 물론 중장년 층으로 넓게 확산돼 가고 있는 추세다.
그 원인은 대략 두가지로 압축되는데 그 중 하나는 컴퓨터나 워드프로세스를 잘 활용하지 못해서 생겨나는 테크노불안증이나 또는 컴퓨터 만능주의에 빠져버려 흡사 컴퓨터 중독같이 돼버린 "테크노 의존증"을 들 수 있다.
테크노 스트레스가 일상생활에 미치는 영향으로는 남자에게 있어서 최대의 충격이라면 임포텐스를 들 수 있다. 테크노 스트레스 때문에 임포텐스가 되어 남자로서의 기능을 빼앗긴 남성이 증가하고 있다.
이 테크노 스트레스에서 오는 임포텐스는 발기불능만이 아니라 성욕 자체 마저도 빼앗아 버린다. 이렇게 되면 성인으로서의 커뮤니케이션을 일으키는데 중요한 수단의 하나인 섹스에 의한 관계를 몽땅 잃어버리는 것이 된다.
그러므로 "남자는 이렇게 하지 않으면 안된다" 라고 말하는 편협한 관념을 지나치게 갖게 되면 다양한 스트레스는 자가중독을 일으키고 정신적 스트레스가 높아져 이처럼 노이로제와 같은 사태에 빠져들 수도 있는 것이다.
결국 자신의 몸을 컨트를 할 수 있는 것은 자기자신 뿐이다. 스트레스가 쌓이는 것도 당연한 일이지만 스트레스를 해소하기 위해서는 폭넓은 커뮤니케이션과 함께 기분전환으로서의 섹스가 최고의 방법일 수 있다.
전에도 말했지만 섹스란 반드시 삽입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은 것 같다. 하지만 섹스가 곧 삽입이라는 생각은 너무나도 빈곤한 발상이라고 생각된다. 삽입 이상으로 쾌감을 주는 "섹스의 기쁨"이 의외로 많기 때문이다.
여자들은 가끔 영화를 보면서 잘생긴 남자 주인공의 말에 감동받곤 한다. 감성이 풍부한 사람일수록 상대편의 말에 크게 감동받거나 에로틱하게 느끼기도 한다. 그것은 삽입하는 섹스보다 훨씬 센스있다.
인간은 상상만으로도 섹스를 즐길 수 있다. 실제로 상상력이 풍부한 사람은 삽입에 그다지 구애받지 않는다. 특히 여자쪽에서 상상력이 풍부하다면 상대가 굳이 발기가 되지 않더라도 얼마든지 즐길 수 있는 것이다.
말은 달콤한 사탕이며 부드러운 애무와 같다. "이게 기분이 좋아"라는 식으로 먼저 전희 단계에서부터 자신이 느끼고 있는 모든 것을 있는 그대로 솔직히 표현하는 요령이다.
솔직한 기분을 표현하는 것은 서로를 자극시켜 쾌감을 고조시키는 한 방법이다. 여성은 타고난 연기력이 있기 때문에 남자의 눈을 가만히 바라보는 것 만으로 남성을 끝내줄 자신이 있다는 무언의 표현이 가능하다.
그것은 단순한 삽입보다 남자를 훨씬 더 흥분시키는 요소이다. 대부분의 남성은 전희에서 삽입이라는 정해진 코스를 밟는다. 이렇게 키스를 한 다음 애무를 하고 삽입을 하는 일종의 공식적인 섹스는 최악의 상태라 말할 수 있다.
그러므로 여기에 너무 집착하지 말 것을 주문한다. 익숙해진 섹스보다는 이런 다양한 표현이나 행동이 훨씬 더 에로틱한 기분을 만들어 준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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