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남성들, 집단 발기부전?_by 성지식
대한민국의 신체 건강한 남성이라면 누구나 군대 복역 시절의 추억이 가슴 한 곳에 강렬하게 자리하고 있습니다. 그 중에서 동기애가 제일 짙었던 적이 언제인가 생각해보면 바로 훈련병 때인데요. 어색한 까까머리로 낯선 곳에 들어와 힘든 훈련일정을 꿋꿋이 이겨내며 적응할 수 있었던 건 다 동기 녀석들 덕분이죠. 정식으로 자대 배치 받으면서 뿔뿔이 흩어져버렸지만, 동고동락한 친구들이기에 아직도 그 얼굴들이 눈에 선합니다.
제가 이렇게 과거를 회상하는 데는 다 이유가 있습니다. 얼마 전 내원한 한 국군장병 덕분이죠. 각 잡힌 군복에 딱 벌어진 어깨, 까맣게 그을린 얼굴을 하고 100일 휴가를 막 받아 나온 이 청년. 그런데 그의 목소리에서는 군인다운 패기란 전혀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선생님, 전에는 그렇지 않았는데요.”
“뭐가요?”
“발기요. 훈련 내내 여자 친구와의 만남을 꿈꾸며 오직 휴가만 기다렸는데, 만나서 망신살만 뻗치는 거 아닌지 너무 걱정입니다.”
사연을 들어보니 훈련소 입소 내내 아침 발기가 됐던 날이 열 손가락에 꼽을 정도라고 합니다. 그래서 저는 간단하게 “군대에서는 원래 그렇습니다.”라고 웃었습니다.
군대에서는 흔히 “텐트가 안 쳐진다.”라고도 하는데요. 집단 발기부전 현상처럼 대다수 훈련병들이 아침 발기가 되지 않는 걸 비유하는 말입니다. 기지도, 걷지도 못하던 아기 때부터 아침마다 저절로 서 보이던 물건이 어느 날부터 갑자기 죽어있으니 당연히 놀랄 만도 하지요. 이 때문에 심지어 훈련소에서 주는 ‘짬밥’에 정력 감퇴제 혹은 성욕억제제를 탔다는 둥 온갖 루머도 난무합니다.
사실 신병 훈련소의 힘든 훈련 앞에서는 젊은 혈기도 무너지게 마련입니다. 특히 야간 행군 때를 생각해보면, 지금 살아 있는 것도 용하다는 생각이 들 정도입니다. 이렇게 육체적으로, 심적으로 지친 몸이 성치 않은데 아침 발기가 제대로 될 리가 없지요. 실제로 육체적 만성 피로와 스트레스는 발기부전의 주요 원인으로 꼽힙니다.
저는 100일 내내 고된 훈련에 치인 심신을 최대한 안정시키라는 조언을 해주었습니다. 별 거 아닌 처방이었지만 그 청년은 포상 휴가를 상부로부터 막 하달 받은 군인처럼 씩씩하게 웃어 보이고 악수를 청하더니, 다시 자랑스러운 국군장병의 모습을 되찾았습니다.
한데 아직도 찜찜한 기분이 드는 건 왜일까요. 생각해보니 최근 발기부전 증세를 호소하는 20~30대 젊은 직장 남성들이 늘고 있습니다. 업무 과다와 잦은 야근으로 인한 직무 스트레스와 만성 피로, 경제 악화와 고용 불안 등등이 범벅이 되어 심신에 지나친 무리를 주기 때문입니다. 이러다가 군대 훈련소처럼 ‘직장인 집단 발기부전 사태’가 벌어지는 건 아닌 지 비뇨기과 의사로서 걱정이 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심지어 여름휴가를 자진 반납하겠다는 직장인들도 많다는 소식이 들려오는데요.
발기부전은 올바른 식습관과 규칙적인 운동, 금연, 금주를 통해 일상생활 속에서 얼마든지 쉽게 자연 치료가 가능합니다. 하지만 젊다고 자신의 건강을 과신하여 생활 리듬의 균형을 깨고 신체를 혹사시키면, 발기부전과 그로 인한 스트레스에 시달려 삶의 질을 하락시킬 공산이 큽니다. 최근에는 의학기술이 발달하여 전문의의 처방만 명확히 적용된다면 치료가 수월한 것이 사실이지만, 그 전에 미리 미리 예방하여 발병을 막는 것이 더 바람직한 자세가 아닐 수 없습니다. 젊은 남성들이여, 힘들 때일수록 보다 여유를 가져보는 건 어떨까요. 훈련소 시절, 텐트가 안 쳐지던 그 때를 호탕하게 웃으면서 회상할 수 있게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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