꼬리 아홉 달린 여우에 관하여
성지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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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6.17 21:20
영화 [Tourist]
내가 아는 그녀는 정말이지 특별한 구석이라고는 없었다. 생긴 것도 고만고만했고 직업도 평범하고 집안에 돈이 많은 것도, 그렇다고 학벌이 높은 것도 아니었다. 좀 더 자세하게 말하자면 외모 면에 있어서는 중. 하로 분류가 될 것이며 직업은 세일즈. 학력은 전문대 중퇴이다.
사실 이런 조건으로만 보자면 그녀를 누군가에게 소개한다는 것도 힘들 정도이다. 하지만 그녀는 내가 누군가를 소개 해 줄 필요가 전혀 없다. 과거도 늘 그랬지만 지금도 그녀의 주변에는 처치가 곤란할 정도로 남자가 넘쳐흐른다.
그녀는 자기 자신을 아주 냉정하게 평가하고 있다. 하도 오랜 세월을 봐와서 내 눈에는 그녀가 예뻐 보이기 때문에 간혹 그녀에게 외모를 칭찬하면 그녀는 웃으면서 자신의 단점들을 얘기한다. 거기다 자신의 학벌을 비롯한 기타 프로필들이 화려하지 못하다는 것도 충분히 잘 알고 있다. 그러니까 확실하게 자기 자신에 대해 주제파악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녀의 장점을 말하자면 똑똑하고 사려심이 깊다는 것이다. 사람과 놀라울 정도의 공감 능력을 자랑하며 비록 학벌은 대단치 않지만 그런 제도적인 공부를 떠나면 아주 똑 소리가 날 정도로 영특하다. 거기에다 혼자 사는 여자들이 흔히 그렇듯 마구 긁어댄 카드 값 때문에 걱정 한 적이 단 한 번도 없을 정도로 돈을 계획성 있게 잘 쓰고. 대인관계도 좋은 편이다.
허나 이런 장점들이 있다고 해도 이건 어디까지나 그녀를 길게 지켜 볼 때나 드러나는 것들일 뿐. 남자들에게 그토록 이나 어필할 수 있다는 것에 대한 충분한 설명이 되지는 못한다. 그래서 나는 연애 카운셀러의 신분을 잠시 접어두고 오히려 그녀에게 물었다.
‘넌 도대체 남자 꼬시는 비결이 뭐니?’
그녀는 잠시 웃더니 대답했다. 자기도 스스로 생각했을 때 남자에게 어필할 수 있는 타입은 절대 아니라고, 하지만 자기만의 비법이 있기에 그 많은 남자들이 자신에게 목을 매게 할 수 있었다고 했다.
똑똑한 그녀는 우선 남자를 만나면 말을 아꼈다. 그리고 최대한 상대방의 말을 들어줌으로써 두 가지의 소득을 올릴 수 있었다. 첫째, 말을 잘 들어주는 편안한 대화상대. 사람들은 종종 자신이 말을 많이 하면 할수록 대화를 잘 한다고 착각을 하는데 천만의 말씀이다. 상대에게 공감을 불러일으키려면 오히려 그 반대여야 한다. 말을 잘 들어주는 것. 그것은 대화에 있어 가장 기본적인 상식이다.
둘째, 그렇게 상대의 말을 많이 들어주다 보면 그만큼 상대방에 대한 정보가 쌓인다. 즉 그녀가 먼저 그를 파악하게 된다는 것이다. 이렇게 파악한 정보를 가지고 그녀는 최대한 자신이 그가 원하는 여성상에 가깝게 행동을 했다. 이를테면 좀 터프하며 지배력이 강한 남자에게는 어감상 좀 그렇지만 ‘말 잘 듣는 착한 여자’가 되었고, 너무나 소심해서 누군가가 이끌어 주길 바라는 남자 앞에서는 굉장히 리더십 있는 여성으로 분했다. 철학적이며 사색적인 남자에게는 그녀 또한 그런 여자가 되어서 대화를 이어갔으며, 똑똑하고 스마트한 남자 앞에서는 그녀 역시 알고 있는 지식을 최대한 활용 하여 똑똑한 여자로 그를 사로잡았다. 그리고 이것을 위해서는 평소 엄청난 양의 독서 및 공부가 필요하다고 했다. 신문과 뉴스를 챙겨 시사와 경제 그 어떤 문제에 있어서도 막힘이 없어야 하고, 잡지 등으로 트랜드를 읽고 편협적이지 않은 광범위한 독서로 다방면에 걸쳐 지식을 쌓았다. 그래서 그녀는 학벌이 그저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말 똑똑한 여자가 될 수 있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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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는 외모에 대한 노력도 게을리 하지 않았다. 하지만 단 한 가지 다른 점이 있다면 모두 자신의 취향대로 외모에 신경을 쓰는 여자들과 달리 그녀는 철저하게 상대방의 취향대로 외모를 가꾼다는 것이었다. 얼굴 생김새와 몸매는 어쩔 수 없다 하더라도 옷차림, 헤어스타일, 메이크업에 있어서 모두 상대의 취향을 파악한 다음 그녀는 만나는 남자에 따라 변신을 했다. 그래서 그녀의 외모만 보더라도 지금 어떤 남자를 (어떤 취향을 가진) 만나는지 단번에 알 수 있었다. 커리어우먼 같은 느낌에서 청순한 소녀 같은 분위기, 그리고 섹시한 스타일에서 깜찍 발랄한 타입까지 그녀는 어떤 것이든 상대의 취향에 따라 이미지 변신을 시도했다. 그러니까 그녀는 누구나 다 인정할 만큼 예쁘지는 않지만 적어도 그녀가 만나고 있는 단 한 사람에게는 예뻐 보일 수 있는 노력을 게을리 하지는 않은 것이다.
마지막으로 그녀는 쉽게 자신을 허락하지 않았다. 이건 우리 모두 다 아는 사실이지만 남자고 여자고간에 쉽게 잡은 물고기에는 그만큼 쉽게 실증을 낸다. 그래서 그녀는 데이트는 하지만 아직 당신에 대한 확신은 서지 않은 상황이에요를 끊임없이 연출했다. 비록 그의 마음에 들기 위해 자신을 싹 바꿀지라도 언제나 그들로 하여금 애가 타도록 한 것이다. 이러한 노력의 결과 그녀는 자기가 한번 찍은 남자는 절대로 놓치지 않았다. 그것도 자기가 매달리며 사귀자고 하는 게 아니라 상대방이 그렇게 하도록 만든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여자라면 모두가 바라는 게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사실 연애카운셀러인 나 조차도 남자의 마음에 쏙 들 수 있는, 이런 식의 아주 구체적인 방안을 제시한 적은 없었다. 마음에 드는 남자가 있는데 그는 나에게 관심이 없어요 같은 질문에 언제나 그에게 관심 있다는 티를 너무 내지 말고 서서히 접근하라는 식의 충고만 해 왔을 뿐이었다. 하지만 그녀의 얘기를 듣는 순간. 이것보다 더 확실한 책략은 없겠구나 싶어 무릎이라도 칠 지경이었다.
그녀는 스스로가 자신을 꼬리 아홉 달린 여우라고 마인드 컨트롤을 한다고 했다. 무엇보다 중요한 건 자기 스스로 그렇게 믿는 것이라고, 만약 조금이라도 자기 자신을 의심한다면 그건 금방 들통이 나는 ‘내숭’ 에 불과할 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말이다. 정말이지 그녀를 보면서 꼬리 아홉 달린 여우를 내 눈앞에서 직접 보는 느낌이었다.
사실 그 동안 나는 꼬리 아홉 달린 여우는 어느 정도 조건이 되어야 가능하다는 생각을 했었다. 그리고 그 중에서도 외모가 가장 많은 부분을 차지한다고 믿었다. 다들 알겠지만 남자들은 예쁜 여자에 약하다. (여자들도 잘 생긴 남자에게 그러하듯) 그러나 이 예쁜 것을 이길 수 있는 게 있었으니 바로 그녀의 철저한 준비와 계획성이었던 것이다.
그녀는 실로 다양한 연애를 했다. 그리고 대부분은 썩 괜찮은 남자들이었다. (물론 그 남자들 개개인의 특징 및 취향은 다 달랐지만) 나는 냉정하게 평가했을 때 그녀가 늘 자신에게 조금은 과분해 보이는 남자들을 너무나 손쉽게 사귀는 것에 놀라워했었는데 얘기를 듣고 나니 저렇게만 한다면 어지간한 남자들은 다 내 남자로 만들 수 있겠구나 싶었다.
영화 [Tourist]
물론 남자를 사귀기 위해 누구나 저런 책략가가 되어야 하는 건 아니다. 많은 사람들은 자신의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사랑해주길 원하기도 하니까. 하지만 내가 원하는, 그리고 나보다 좀 더 나은 남자 (이건 꼭 조건만 그렇다는 건 아니다.) 를 만나고 싶다면 나는 그녀처럼 해 보라고 권하겠다. 그저 가만히 앉아서 그가 나에게 반해주기를 바라느니 저렇게 적극적인 태도로 쟁취하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한다.
남자 하나 사귀려고 저렇게까지 가면을 써야 하느냐고 묻겠지만 단언컨대 이 세상 그 누구도 단 하나의 모습만을 갖고 살지는 않는다. 직장에서는 직장대로, 또 친구들 앞에서, 가족들에게 보여 지는 내 모습은 저마다 다 다를 것이다. 그렇다면 내 남자로 만들고 싶은 그 앞에서 꾸며진 나를 보여주려고 하는 게 그렇게 못할 짓은 아닐 것이다. (사실 여자들은 남자를 만나면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내숭을 떨지 않는가) 잘 보이려고 노력하는 것도 어떻게 보면 진짜가 아닐 수 있다. 여기서 진짜와 가짜를 따지는 건 무의미한 일이다.
만약 지금 누군가를 마음에 담고 있다면, 그런데 안타깝게도 그가 나를 시큰둥한 눈길로 보고 있다면 당장 저 방법을 시도해보길 바란다. 아님 말고 정도의 마음이라면 굳이 그럴 것 없겠지만 꼭 가지고 싶다면 어떻게든 가지는 것. 그것도 세상을 사는 한 가지 방법이다.
(물론 이 안에는 범법행위나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무.조.건. 따위의 전제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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