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들이 말하는 -남자가 간지 날 때-
성지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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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6.16 09:20
영화 <킹스맨>
요즘 잘 나가는 한 인터넷 사이트 게시판에 10대 여학생들이 올려놓은 글을 보며 그 재기 발랄함과 솔직함에 박수를 치곤 한다. 잠시만 시대의 흐름을 놓치면 이해하기 어려운 통신용어와 이모티콘으로 가득 찬 글들이 얼핏 보면 경박하고 유치하기도 하지만 가식 없는 통쾌한 단어 사용과 구체적인 표현이 재미와 공감을 자아내는 건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한 때 큰 웃음을 주었던 여학생들의 글- ‘남자들이 가장 간지 날 때'를 잠깐 소개하자면 이렇다.
“주차증 빼서 물고 한 손으로 후진할 때…… 악. 나를 죽여라.”
“특히 한 손은 의자에 걸치고 한 손으로 후진할 때. 꼭 한 손은 의자에! 주차증을 입에 꼭 물어야 한다긔(통신용어. 비슷한 표기: 한다규~)”
“키 180이상에 얼굴은 돌체앤XXX, 스타일은 디올XX 에 뿔테 끼고 샤프하게 자른 머리로 바쁘게 걸어가면서 한 손엔 신문, 한 손엔 햄버거 든 남자”
“(댓글) 근데, 신문은 벼룩XX”
“저는!!! 슬림한 넥타이에 은갈치색이나 올블랙으로 수트를 맞춰 입고 피곤한 듯 미간에 주름져 가면서 넥타이 느슨하게 한 다음에 담배 입에 물고 간지 나는 은시계 푸를 때. 하악하악하악”
“업무 서류 검토에 정신이 팔려 뒤에서 불러도 모를 때”
“정장 입은 남자가 양손을 주머니에 넣고 나를 웃으면서 바라볼 때”
“(댓글) 바지 주머니가 아니라 자켓 주머니에 넣으면 어때?ㅋㅋㅋㅋㅋ”
“(댓글) 자켓 주머니에 손 넣고 일수 가방 끼면 킹왕짱쪼다 (요즘 통신유행어) “
소녀들의 수다를 읽으며 정신없이 웃다 보니, 약 10년 전 잠시 만나다 헤어진 A군이 떠오른다. 준수한 외모에 반듯한 성품을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그가 좀처럼 남자로 보이지 않던 이유는 어쩌면 ‘자동차 핸들을 양손으로 잡고 바들바들 후진하던 모습’ 때문이었을 지도 모른다.
반면, 한 손으로 멋지게 휙 유턴 하는 모습이 당장 덮치고 싶을 만큼 섹시한 남자도 있었다. 그런 내 마음을 안 이후로 일부러 유턴할 곳을 찾아대곤 했던 J군. 그는 지금의 내 남편이다.
미니스커트를 입고 엉덩이를 흔드는 여자에게 흔들리는 남자들과는 달리, 여자는 남자가 뭔가에 몰두해 최선을 다하는 프로페셔날한 모습에 섹시함을 느낀다. 또, 자신이 취약한 부분을 거뜬히 해내는 남자의 모습을 보며 ‘아 저 든든한 가슴에 폭 안기고 싶다.’라는 생각을 하기도 한다. "한 손으로 거칠게 후진하기”와 “근력 운동 후 땀 흘리는 모습” “무거운 물건 여유롭게 들어 옮기기” 등이 그 대표적인 예다.
그래서인지, ‘나를 번쩍 들어올려 침대로 내동댕이 쳐 주는 남자’’에 대한 여자들의 로망은 세월이 지나도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몸무게가 80kg를 넘는 친구 중 한 명은 몇 년 전 순 사기꾼 같은 자식을 만나 돈만 야금야금 뜯기고 결국 헤어졌다. 하지만 그녀는 아직도 그를 잊지 못한다. 초등학생 때부터 줄곧 뚱뚱해 평생 누구한테 업혀 본 적도 없는 자신을 가뿐히 안아 침대에 눕혔다는 것이 그 이유. “나를 안아서 침대에 던져줄 사람을 내 평생 다시 만날 수 있을까?”라며 한숨짓는 그녀… “살 빼면 되잖아.”라고 쉬운 말로 위안을 했지만 한편으론 나도 한숨이 난다.
“침대 위로 번쩍 들어올려지는 로맨틱한 순간이, 그 열정이, 그 근력이… 언젠간 다시 살아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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