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섹스하고 싶어서 이러는 건 아니야!
성지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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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6.15 21:20
영화 <섹스 이즈 코미디>
“우리 남편은 밤에 지퍼를 목까지 올리고 자. 내가 덮칠까 봐 겁나나봐. 팔베개? 어림도 없지. 살이 조금이라도 닿는다 싶으면 이불을 돌돌 말아서 등을 확 돌려버린다니까.”
눈물까지 글썽글썽하며 삼십 분이 넘게 하소연하던 그녀는 결국 질문 아닌 질문을 했다.
“나 바람이라도 피워볼까?”
달리 할 말이 없어 “그럼 그러던지…” 라고 시큰둥하게 대답하자, 그녀는 억울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덧붙였다.
“내가 섹스하고 싶어서 이러는 건 아니야.”
대부분의 기혼녀들은 그게 무슨 말인지 대변에 안다. 그렇다. 우리가 가끔 바람 피우고 싶은 마음이 드는 건 꼭 섹스 때문만은 아니다. 그럼 왜? 남편 얼굴이 지긋지긋해서? 남의 남편보다 우리 남편이 못나 보여서?
선천적으로 모성애를 타고난 많은 여자들은 못나 보일 때 떠나고 싶은 마음보다 측은지심을 가진다. ‘나 아니면 저 인간을 누가 거둬주나.’라는 생각에, 구박은 할지언정 배신은 못 하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무능력한 남편, 바람난 아내’라는 말에 동의하지 않는다. 바람난 아내의 배경에 무능력한 남편이 많은 이유를 굳이 따지자면, 무능력한 남자는 아내의 바가지를 유도하고, 바가지 긁히는 남편은 아내를 여자로 보지 않기 때문이다. 또, 남자가 자신감을 잃으면 남성성마저 잃고, 남성성을 잃은 남편 또한 아내를 여자 취급하지 않는다.
유부녀들이 자주 간다는 일산의 한 나이트나, 30세 이상만 출입할 수 있다는 강남의 모 클럽에 뻔질나게 드나드는 여자들이 한결같이 하는 말이 있다.
“우리 남편은, 내가 뭐 하는지 별로 신경 안 써”.
헤어스타일이 바뀌었는지, 최근 섹시한 속옷을 장만했는지, 요즘 왜 우울해 보이는지, 아내가 마지막으로 오르가슴을 느껴본 게 언제인지. 관심은커녕 귀찮아하는 기색이 역력한 남편 앞에서 여자들이 느끼는 감정은 복잡하다. ‘나는 더 이상 여자가 아니구나’’라는 상실감, ‘누가 나를 이렇게 만들었지? ”라는 분노. ‘딴 여자가 생긴 건 아닐까?” 라는 자격지심 '예뻐질 테다. 그리고 당신은 쳐다도 안 볼 테다.’ 하는 복수심. 여자로서의 자아를 상실한 우울함은 보톡스를 맞고 젊어지는 것으로 만회되지 않는다. 극성엄마가 되어 자식교육에 열을 올리는 것으로 보상되는 것은 더더욱 아니다.
그런 종류의 우울함을 가진 여자들이 낯선 남자의 눈빛 앞에 나약해지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하다. 그들은 그녀의 모든 것에 관심이 많다. 립스틱 색, 향수 냄새는 물론이고, 살짝살짝 비치는 속옷 끈조차도 그들의 관심 대상이다. 게다가, 그들은 그녀의 우울한 표정을 그냥 지나치지 않는다. 아무 말 없이 머리를 쓰다듬어 주거나 꼬옥 껴안아줄 준비가 언제든 되어 있다. 그의 관심과 호의가 결국 자신을 호텔방으로 이끌겠다는 강렬한 의지에서 비롯됐다는 것쯤은 안다. 하지만, 아무려면 어떤가. 이 남자는 적어도 나와 섹스하고 싶어하지 않는가. 내 마지막 오르가슴이 언제였는지, 남편보다 백배는 더 관심 있어 하지 않는가.
“추리닝을 목까지 껴 입고 하루 종일 티브이만 째려보고 있는 남자랑, 나와 섹스 한번 해 보려고 지극정성을 들이는 남자…. 너 같으면 누굴 택하겠어? 라고 그녀가 질문했다. “그 지극정성남도 자기네 집에선 TV만 쳐다보고 있을걸?” 하고 대답했다. 답답해하는 그녀를 더 우울하게 만든 것 같아 미안했지만, 진실은 하나다. 키스가 곧 섹스인 줄 아는 이 세상 모든 남자들은 아내와 키스하지 않는다는 것.
나의 이 글을 보고 남편이 무슨 말도 안 되는 궤변이냐고 항의한다. ‘그래? 그럼 증명해 보이시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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