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번역] 오르가슴의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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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내용은  영국 버밍엄대 캔디다 모스 석좌교수(신학)의 칼럼으로, 미국 뉴스 웹사이트 '데일리비스트'에 실린 내용을 번역한 기사입니다.

[칼럼번역] 오르가슴의 역사              이미지 #1
사진=속삭닷컴제공

평균적인 남녀가 오르가슴을 느끼는 시간은 너무 짧다. 고작 1주일에 20초, 1년에 약 20분, 평생에 약 10시간에 불과하다. 그런데도 오르가슴은 경제·과학·문화적 상상력의 너무 큰 부분을 차지한다. 

연인을 만족시킬 수 있는 최선책을 조언해 줄 수 있는 안내서는 전혀 부족하지 않다. 

만약 무언가가 ‘좋다(wonderful)’고 말하고 싶다면, 그건 관용구로 ‘성관계보다 더 나은’(better than sex)이라고 표현한다. 또 맛있거나 불법적인 것은 ‘오르가슴 같은(orgasmic)’이다. 미국 영화배우 아놀드 슈워제네거는 자신의 이두박근을 푸는 것을 ‘사정처럼’ (ejaculating) 만족스럽다‘고 표현할 수도 있다. 

오르가슴은, ‘섹스의 역사’(Making Sex) 저자인 토머스 라커의 말마따나, 고대 의사들에게는 ‘사망률·세대 주기의 신체적 신호’였다. 

고대에는 게으름은 인체의 점액이 지나치게 많아 생기기 때문에 정액을 배출하는 행동(사정)으로 완화될 수 있다고 믿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실제로 정액을 ‘배설물의 분비물’이라고 불렀다. 동시에 정액은 자연적으로 생명의 본질을 포함한, 혈액의 가장 순수한 형태로 여겨졌다. 이런 식으로 남성 오르가슴은 출산의 필수 조건이자 체온과 인체의 성향을 조절하는 수단이었다. 인간의 균형을 유지하게 해주는 것이었다.

고대의 많은 의사들은 남녀의 ‘두 가지 씨앗’에 의한 출산 모델을 믿었다. 2세기 의사 갈렌은 심지어 자궁뿔(나팔관) 내부의 액체를 봤을 때 ‘여성 씨앗’을 발견했다고 생각했다.

아리스토텔레스에게는 쾌락과 출산이 별개의 것이었다. 남성들이 오르가슴에 빠져 경험하는 쾌락은 정액의 생산과 관련이 없다. 어린 소년들과 노인들이 자손을 낳지 못해도 쾌락을 경험하는 게 그 증거다. 대부분의 고대 철학자들에게 오르가슴은 몸에서 신체의 생식 물질을 배출하는 마지막 열 폭발이었다.

고대와 중세 작가들은 여성들이 삽입성교 때 오르가슴을 느낄 것으로 예상했다. 6세기 의사 에티오스 아미타는 여성 오르가슴을 일종의 임신 징후로 생각했다. 

1558년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클리토리스가 쾌락의 중심으로 확인됐다. 하지만 중세 산파들은 여성 오르가슴이 일상적이며, 임신에 필요한 전제조건이라고 생각했다. 

오르가슴의 황홀한 전율은 자궁이 정액을 내부로 끌어들이고, 임신의 시작을 허용하는 봉인된 표지였다. 그러므로 오르가슴은 일종의 잠재적 책임이었다. 히포크라테스는 “여자를 너무 많이, 너무 빨리 흥분시키면 자궁이 닫힐 것”이라고 말했다.

여성이 오르가슴을 느끼지 않고서는 임신을 할 수 없다면, 강간 피해자는 임신할 수 없어야 마땅하다. 라틴어로 쓰여진 13세기 영국의 법률문서 플레타는 “여성의 동의 없이는 임신할 수 없다”고 규정하고 있다. 마찬가지로 사무엘 파르의 저서 ‘법의학 개론’ (Elements of Medical Jurisprudence, 1814)에는 “정욕의 자극이 없이는, 임신이 될 수 없다”고 규정돼 있다.

즐거운 성관계에 대한 묘사는 기독교의 발흥과 관련이 있다. 물론 종교 지도자들이 항상, 어디서나 성적 쾌락을 비도덕적인 것으로 여기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16세기 스페인의 안테케라 교회의 프란시스코 베제리아 박사(성당 참사회 회원)는 “결혼 생활의 성행위는 항상 죄악이며, 주님께서는 결혼 생활의 성관계의 죄악을 더 이상 용서할 수 없다”고 선언했다. 특히 전희에서 느끼는 오르가슴은 치명적인 죄악이었다.

여성들은 수동적이고 고대 팔미라(현재의 터키)의 제노비아 여왕을 본받도록 권장됐다. 제노비아 여왕은 임신을 하려고 작정할 경우 외에는 성관계를 갖지 않았다. 또 손발에 비해 성기의 민감도가 훨씬 더 떨어졌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렇다면 여성이 어떻게 그럴 수 있을까? 17세기 신학자 토마스 산체스의 실용적인 조언에 따르면 여전히 거짓말을 하고, 성호를 긋고, 하나님이 남성 파트너를 오르가슴의 쾌락에 빠지게 않게 해주시길 기도하면 된다.

킨제이 박사는 1940년대에 이르러, 여성의 40%가 자위행위로 첫 번째 오르가슴을 느낀다고 보고했다. 그의 이후 연구는 여성 오르가슴의 진화론적 목적에 관심이 있었다. 1967년 ‘벌거벗은 원숭이’(The Naked Ape) 저자인 데즈먼드 모리스는 여성 오르가슴의 진화론적 목적은 여성들이 적절한 배우자를 선택할 수 있게 하는 데 있다는 가설을 세웠다.

하지만 진화생물학자 로빈 베이커는 이에 일부 반대했다. 그는 199 년 자신의 베스트셀러 ‘정자 전쟁’에서 여성 오르가슴의 목적은 정액을 자궁에 끌어들이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는 종전 이론과 비슷하다. 그의 연구는 표본 수가 적고 방법론상 오류가 있다고 비판받았다. 

생물학적이든 아니든 사람들은 여성들에게 오르가슴을 느끼게 하는 데 오랫동안 어려움을 느꼈다. 히스테리 치료를 위한 바이브레이터의 발명도 여성들에게 썩 큰 도움을 주지 못했다. 

조나단 마르고리스는 남태평양 망가이안 소년들은 자신들이 절정감을 느끼기 전에 파트너들이 오르가슴을 느끼게 하는 성교육을 항상 받는다고 전했다. 쿤닐링구스(입술이나 혀로 여성의 성기를 애무하는 행위)에 관한 정식 교육도 그 가운데 속한다. 

오르가슴에 대한 연구는 종전의 진화적인 이해에서 의학적인 가치로 방향을 틀었다. 오르가슴의 건강 상 이점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오르가슴은 기분을 좋게 하고, 뇌 기능을 향상시키고, 백혈구 수치를 높이고, 고통의 경험을 줄여준다. 

이런 과학적 초점의 변화는 문화적 변화에 해당한다. 1960년대 여권의 신장, 이혼율의 증가와 함께 남녀의 성적 적합성을 중시하는 풍조에 따라 오르가슴은 일종의 ‘시민권’처럼 여기게 됐다. 이는 토머스 라커의 말이기도 하다. 

제시카 바론 박사(레일리 과학기술가치센터)는 “인간의 에너지가 정체되거나 갇히면 위험해진다”며 “상대적으로 억눌린 감정을 가진 사람들을 치료하는 데도 오르가슴이 활용된다”고 밝혔다. 

오르가슴이 모두 다 좋은 것은 아니다. 남성들의 경우 오르가슴 때 느끼는 날아갈 듯한 순간의 행복감이 종종 슬픔으로 바뀐다. 남성들은 고갈되기 쉽고, 취약한 존재다. 

갈렌은 “모든 동물은 인간 암컷과 수탉을 제외하고 성욕 후 슬프다”고 갈파했다. 17세기 철학자 스피노자도 저서 ‘지성개선론’에서 “감각적 쾌락의 즐거움이 끝나면 가장 큰 슬픔이 뒤따른다”고 말했다. 

모든 성관계는 남성을 불행하게 만들 가능성이 있다. 특히 사회통념에 어긋나는 오르가슴, 즉 자위행위와 관련된 문제가 있다. 1994 년 여성 외과의사인 조슬린 엘더스는 자위행위의 공중보건 가치를 인정하고, 교육을 주장하다 해고된 것으로 알려졌다. 

자위행위에 대한 불안감은 비교적 새로운 것이다. 고대 그리스인들은 자위행위에 큰 의미를 두지 않는 것처럼 보였고, 중세 신학자들은 남색(동성 성행위)과 간통을 더 걱정했다. 기독교 작가들은 자위 행위를 지지하지 않았으나, 이를 비난하는 데 지적인 노력을 기울이지도 않았다.

토머스 라커의 ‘고독한 섹스’(Solitary Sex)에 따르면 1712년경 ‘오나니아’(Onania)라는 제목이 붙은 작은 책자가 발행된 게 자위행위의 역사적 전환점이 됐다. 

이 제목은 죽은 형의 아내인 타마르와 하는 수 없이 성관계를 갖더라도 씨(정자)를 땅 위에 쏟았던 성서 속 인물인 오난을 바탕으로 한 것이다. 오나니아는 열광을 일으켰다. 이와 함께 자위행위는 여드름·척추결핵·광증 등 모든 질병의 원인으로 여겨졌다. 

카사노바는 “기독교인들은 자위행위에 빠진 청년들이 율법을 위반하고 자신들의 삶을 단축시키는 것으로 믿고 있다”고 한 이슬람 현자에게 말한 것으로 전해진다. 어쨌든 오르가슴의 생물학적 기능, 목적, 성적 쾌락의 문화적·상징적 의미 등에 대한 우리의 이해도는 끊임없이 변하게 마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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