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어때, 그 불편함에 대하여
성지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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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2.25 12:20
여기어때 CF – 유병재, 박기량 편
웃긴 것은 사실이다. 이 광고 영상을 볼때 피식이나마 웃지 않을 수 없다. 남자의 가슴에 뜨거운 불을 지피는 박기량의 은근한 신호와 유병재라는 불가항력의 캐릭터가 표현한 너도 알고 나도 아는 그 야릇하고도 짜릿한 분위기. 10초 남짓한 영상이지만 모텔 앱의 유머러스한 자기 소개로는 충분하고도 넘친다. 그러나 무엇인가가 석연치 않다. 뭔가 불편하다.
하고 싶다고 왜 말을 못해!
남녀를 불문하고 '우리 섹스하자!'라고 말하기 어려운 게 현실이다. 그걸 어떻게 잘 표현하느냐에 따라 목적 달성의 여부가 달라지기도 하니,더욱 더 그 제안을 하는 데에 있어서 조심스러워질 수밖에 없다. 이성애적 관계의 경우, 남성이 그 제안을 하면 섹스를 강요한다는 느낌이 들까봐 걱정이고, 여성이 그 제안을 하면 밝히는 사람처럼 비춰질까 봐 걱정이다. 그 젠더를 막론한 섹스의 어려움을 이 광고는 너무나 편하게 해석해 버린다.
영상 속 여성은 직접적으로 정확하게 뭘 하고 싶다고 말할 줄 모른다. 그 대신 모텔에 가자는 제안을 은유적으로 남성에게 던진다. 그 제안을 섹스로 이해한 남성의 가슴에는 불꽃이 타오른다. 씻고 싶다는 말에서 섹스를 읽고, 택시 타면 비싸다는 말에서 섹스를 읽는다.무슨 말을 해도 심드렁하던 남성이 '혼자 있기 싫어'라는 말에는 눈을 밝힌다. 남성을 전부 틈만 나면 섹스만 노리는 짐승으로 표현해서 얻는 게 뭔지 모르겠으나, 그것이 여기어때가 광고를 통해 보여주는 그들의 유머 코드다.
영상으로 보면 짐짓 웃고 넘어갈 만한 사안이지만(실제로 영상 속 여성은 섹스를 원하는 걸지도 모른다) 현실에 대입해서 보면 섬뜩한 부분도 없지 않다. 데이트 성폭력과 같은 사건이 발생하는 배경도 결국은 영상 속 상황과 그리 크게 차이가 나지 않기 때문이다. 그 모든 게 여성의 말에서 섹스라는 행간을 읽는 오해에서 시작되는 범죄가 아니던가. 혹자는 이 지점에서 '저런 눈빛을 보내고 저런 식으로 말을 하는데 지가 섹스하고 싶다고 해놓고 들어가면 싫다고 하는 게 말이 되냐'며 분개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같이 있고 싶다' 혹은 '모텔에 간다'는 사실이 여성의 섹스에 대한 암묵적 합의이자 섹스의 제스처임에 틀림없다고 확신하는 그 지점에서부터, 그리고 그 판단에서 어긋나면 '니가 먼저 꼬리쳤잖아'라고 변명할 준비를 하는 그 지점에서부터 이미 문제가 아닐까.
해결해야 할 젠더 간 문제는 이미 너무나 많다. 그런데 대중을 대상으로 하는 광고가 나서서 여성을 섹스에 대해서 주체적으로 말할 줄 모르는 소극적인 객체로 비추는 것은, 또 남성을 뭐만 하면 섹스를 떠올리는 한 마리 짐승처럼 프레이밍하는 것은 한없이 무책임한 선택이라고 밖에 설명할 길이 없다. 남녀 모두에게 참으로 불편하기 짝이 없는 성 문화를 손수 정착시키려는 꼴이다.
모텔이라니... 모텔이라니!
사실 모텔이라는 공간은 꼭 선정성을 팔아야만 할 필요도 이유도 없다. 음지에서 양지로 서서히 발돋움하는 모텔업계는 어느새 하나의 놀이 문화로 자리 잡아가고 있다. 인테리어는 물론 수영장과 같은 고급 시설, 노래방이나 당구대 등의 오락 시설을 갖춘 업소가 많아짐에 따라 모텔은 이제 친구들끼리 생일을 축하하기 위한 파티룸이기도 하고, 여행지에서 너무 비싸지 않은 가격에 좋은 시설을 갖춘 숙박업소이기도 하며, 연인끼리 추운 겨울날 둘만의 공간에서 편하게 데이트할 수 있는 실내공간이기도 하다. 섹스하러 가는 곳이라는 인식이 강했던 모텔에 이제는 놀러 가는 시대가 온 것이다.
몇 년 사이 해당 업계가 이루어낸 문화적 변화는 모텔을 대중화하는 작업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실제로 모텔의 용도가 다양화 되면서 그 시설이나 안전성 등에 대한 정보가 더 많이 알려지게 되었고, 사용자에 대한 인식도 변하였으며, 업계 전반이 상향평준화 되었다. 그런데 또다시 모텔을 섹스에만 직결시키는 광고를 여기어때가 만든 것이다.
이 광고가 제시하는 메세지는 지극히 단순하다. "모텔은 곧 섹스하는 곳이니 그녀가 내 가슴에 불을 지필 때 기회를 놓치지 않고 인근 모텔을 이 어플로 찾아서 가라!"가 그것이다. 여기어때가 어필하는 모텔이라는 공간은 섹스를 하기 위해 대실을 하거나 숙박을 하는 공간에 지나지 않는다. 힘들게 양지로 부상하는 모텔업계의 변화를 부정하는 이 광고는 기존의 19금 코드를 그대로 이용함으로써 모텔업계가 오랫동안 탈피하고자 했던 음지적 이미지를 또다시 각인시키고 있는 것이다. 섹스가 이루어지는 곳으로 모텔이 기능하는 것은 사실이나,그것만을 강조하는 것은 또 다른 문제이다.
여기어때, 그 불편함에 대하여
모텔을 주체적으로 사용하는 고객층이 결국은 섹스를 갈망하는 성인 남성뿐일 거라 믿어 의심치 않는 광고주의 가치관이 여실히 드러나는 영상이다. 가장 핵심적인 장면에서 매번 여성은 남성의 몸에 기대있거나, 뒤에서 수줍어하기만 하는 모습으로 나타난다. 설령 그게 사업적으로 이득이라 하더라도 여성을 저렇게 소극적이고 비주체적으로 묘사함으로써 성적 대상화하는 것이, 또 남성을 저렇게 섹스의 기회만을 호시탐탐 노리는 불꽃남자로 표현함으로써 짐승처럼 보이는 것이 남녀 전체에 어떤 이점이 있는 것일까? 여기어때는 이 광고를 통해 마케팅 효과를 톡톡히 봤다고 하지만 글쎄 불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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