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 고학년은 신체변화의 시기… 성 정체성 심어줘야_by 성지식
성지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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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9.24 03:20
23일 청소년을 위한 내일여성센터가 개최한 ‘어린이를 위한 성교육강좌’. 초등학교 4, 5학년생 20여 명과 10여 명의 어머니가 강의에 열중하고 있었다.
이제 막 몸의 변화가 시작되는 초등학생을 대상으로 자연스러운 성 태도와 올바른 성 정체성을 심어주는 게 강의의 목표다.
강사는 아이들에게 인형을 통해 남녀의 차이를 함께 직접 보여 주고 이성에게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 등을 알아듣기 쉽게 설명했다.
아이들은 어머니의 출산 장면을 담은 비디오 등 여러 시청각자료를 보고 강사와 함께 열띤 토론을 벌였다. 또 자궁(子宮)을 형상화한 방 등 여러 체험실에서 이것저것 만져보고 놀랍다는 표정을 지었다. 아이들은 7kg이 넘는 임신체험복을 입고 걸어 다녀보더니 “엄마 정말 힘들었겠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1시간 정도의 강의와 토론, 체험방을 거친 아이들은 “내가 정말 얼마나 소중하고 힘들게 태어났는지 알게 됐다” “여자친구를 다시 생각하게 됐다”는 등의 다양한 반응을 보였다.
4학년 딸과 함께 성교육센터를 찾은 학부모 제인현(서울 양천구 목동) 씨는 “딸에게 ‘신체적 변화가 창피한 게 아니다’고 설명하지만 아이가 쑥스러운지 자꾸 피한다”며 “엄마가 함께 성교육을 받으니까 아이들도 많은 걸 느끼는 것 같다”고 말했다.
○더 조숙해진 아이들…음란물-개방된 성문화에 노출
음란물과 개방적인 성문화 확산 분위기 때문에 아이들의 성의식도 놀라울 정도로 조숙해지고 있다.
전에는 초등학생의 경우 “자위행위가 뭔가요” 등 그나마 순진한 질문이 많았다. 하지만 이제는 “자위를 자주하면 키가 안 크나요” “가슴이 나오지 않으면 매력이 없나요”라는 식으로 ‘발전’했다. 중학생이 “오르가슴은 어떻게 느끼나요”라고 물어보기도 한다.
내일여성센터의 윤정임 성교육 강사는 “몸의 변화를 두려워하고 부끄러워하던 옛 세대에 비하면 그야말로 천양지차”라며 “마우스를 몇 번 클릭하면 쏟아지는 음란물 홍수 속에서 아이들이 자칫 성에 대한 환상이나 왜곡된 가치관을 가질 수 있다”고 말했다.
‘아하’ 청소년성문화센터의 왕강희 교육2팀장은 “음란물을 처음 본 아이들은 ‘우리 엄마 아빠도 저런 짓을 했어’라는 등 자연스러운 성행위까지 변태로 받아들이기도 한다”며 “왜곡된 성 가치관을 갖기 전에 옳고 그름을 판단할 수 있도록 가르쳐야 한다”고 강조했다.
○학교선 수박겉핥기식 성교육…부모와 함께 전문 성교육 배우자
초등학교 6학년 외아들을 둔 이모(37·여·경기 수원시) 씨는 늘 어리게만 생각했던 아들의 자위 모습을 본 충격을 지금도 잊지 못한다.
이 씨는 “어린 아들이 방에서 자위하는 모습을 우연히 봤는데 그 뒤로 눈도 못 마주치겠고 솔직히 꼴도 보기 싫어졌다”고 말했다.
아이를 키우는 부모라면 누구나 이런 고민을 하지만 정작 부모나 학교의 성교육은 너무 미흡하다.
학교에서는 학년당 10시간씩 성교육을 해야 하지만 대부분 보건교사가 남녀의 생물학적 차이를 가르치는 정도다.
이 때문에 달라진 아이들의 눈높이를 맞추기 위해 아이와 함께 전문 성교육 프로그램에 참가하는 부모가 늘고 있다.
내일여성센터 측은 “평일에는 매일 70여 명이 교육을 받고 있으며 토요일의 경우 6월 말까지 예약이 돼있다”고 말했다.
‘아하’ 청소년성문화센터 등 잘 알려진 성교육기관에는 매일 수십 명의 학생과 학부모가 성교육을 받기 위해 찾아온다.
왕 팀장은 “요즘은 아이와 함께 성교육을 받으려는 학부모가 늘고 있다”며 “어른조차 체계적인 성교육을 받아 본 경험이 없어 어른 교육 프로그램도 진행하고 있다”고 말했다.
고려대 의대 박상희(소아과) 교수는 “부모가 숨기고 쉬쉬하면 아이들은 더 이상하게 생각한다”며 “성지식과 성적 욕구를 어떻게 조화시킬지 올바르게 가르쳐 주는 것이 성교육의 핵심”이라고 강조했다.
길진균 기자 [email protected]
외국의 어린이 성교육
“우리 아기 예쁘죠?” 미국의 초등학생들이 밀가루로 만든 아기 인형을 안고 활짝 웃고 있다. 이들은 하루 동안 이 인형을 안고 다니면서 ‘부모가 된다는 것’의 책임감과 어려움을 경험하게 된다. 동아일보 자료 사진
“영국에서 초등학교 6학년 수업시간에 성에 대해 토론하고 선생님이 ‘살펴보라’며 콘돔도 하나씩 나눠줬어요.”
초등학교 시절을 영국에서 보낸 장민영(29·여·서울 용산구 한남동) 씨는 “초등 1학년부터 성교육을 받았고 6학년 때 콘돔을 집에 가져갔더니 엄마가 깜짝 놀라셨다”며 “어릴 때부터 성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수 있는 계기가 됐다”고 말했다.
외국의 성교육은 전통과 문화에 따라 다르지만 미국과 영국은 학교에서 적극적으로 가르치고 있다.
미국은 10대의 임신이 사회문제가 되자 1989년 공립학교의 성교육을 의무화했다. 의사, 사회학자, 교사 등으로 구성된 ‘미국 성정보·교육위원회(SIECUS)’ 등을 통해 유치원부터 초등학교, 나아가 중고교에서의 성교육에 관한 가이드라인을 제시한다.
특히 미국은 연령에 맞는 다양한 교육을 실시한다. 유치원생에게는 ‘새와 꿀벌이 꽃과 만나는 과정’을 빗대어 성교육(Birds and Bees)을 하고 초등생에게는 ‘밀가루로 만든 아기 인형(Flour Baby)’을 안고 다니게 한다. 집과 학교에서 진짜 아기처럼 다루고 통학한다. 육아의 어려움을 체험함으로써 원치 않는 임신을 하지 않도록 가르치기 위한 것이다.
영국은 교육기술부(DFES) 주도로 초등생 성교육을 실시한다. 성지식뿐 아니라 성 문제 대처법을 가르치는 데 역점을 둔다.
이화여대 조연순(초등교육) 교수는 “선진국에서는 초등학생에게도 피임법을 가르친다”며 “우리 청소년도 성에 눈뜨는 시기가 빨라지고 있어 체계적인 성교육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노시용 기자 [email protected]
초등생 성교육 Q&A
아이가 갑자기 성 관련 질문을 던지면 부모는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 몰라 당황하기 일쑤다. 초등학생이 가장 많이 묻는 질문과 적절한 대답을 전문가의 도움으로 알아본다.
Q1: 엄마, 남자들은 좀 유치해요. 왜 여자 애들 치마를 들추거나 옷 갈아입을 때 훔쳐보고 놀려요.
A: 사춘기 남자애들은 대부분 여자 애들에게 관심을 갖는단다. 관심을 여자를 괴롭히는 방법으로 표현하는데 아마 여자 애들이 얼마나 기분 나쁠지 몰라서일 거야. 남자 아이들에게 그러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네 생각을 표현해봐.
Q2:엄마, 생리를 시작하면 키가 안 자란데요. 나는 3개월 전에 시작했으니까 이제 키 안 크면 어쩌지요.
A: 생리는 여자 어른으로 건강하게 커가고 있는 것이지 성장이 멈춘다는 뜻은 아니야. 생리 시작 이후에도 3∼5년 이상 자라니 걱정하지 않아도 돼.
Q3:아빠, 요즘 거기(성기) 주변에 털이 조금 난 거 같은데 친구들은 더 많데요. 저는 왜 이러죠?
A: 네가 그런 고민을 하는 걸 보니 정말 많이 컸구나. 5, 6학년 정도 되면 몸에 변화가 일어나는데 남자는 목소리도 굵어지고 턱, 겨드랑이, 성기 주변에 털이 나지. 어떤 사람은 턱수염이 6학년 때, 어떤 사람은 중학생 때 나고 사람에 따라 수염이 많기도 하고 적기도 하단다. 비정상이라고 걱정할 필요는 없어.
Q4:아빠, 음란물을 보고 싶을 때는 어떻게 해야 하죠?
A: 성에 대한 관심이 생기는 마음은 알겠지만 어린나이에 음란물을 무분별하게 보는 것은 정신 건강에 좋지 않아. 음란물은 사실과는 다른데 사실인 것처럼 잘못된 가치관과 성지식을 갖게 하거든. 성에 관심이 생기면 청소년용 성교육 책을 찾아 읽어보면 어떨까?
Q5:나도 TV에 나오는 연인처럼 키스하고 싶고 자꾸 야한 생각이 들어요.
A: 자연스러운 감정이지만 사람이 하고 싶은 걸 다 행동으로 옮기지는 않는단다. 자위행위는 나쁜 것도 이상한 것도 아니지만 너무 몰입하면 집중력도 떨어지고 자꾸 야한 것만 보고 싶어진단다. 그래서 절제가 필요한 거야. 운동이나 취미 등 네가 좋아하는 활동을 찾아보자.
노시용 기자 [email protected]
23일 내일여성센터가 개최한 ‘어린이를 위한 성 교육강좌’에 참여한 초등학생들이 실제 아기 무게의 인형을 조심스레 들어보며 생명의 소중함을 배우고 있다. 서영수기자
성교육 이렇게…
“보통 자신의 성 욕구도 부끄러워하는 부모가 어린 자녀의 성적 행동에 더 큰 충격을 받는 경우가 많아요.”
세브란스병원 신의진(소아정신과) 전문의는 “초등생 학부모들은 자녀가 성적 욕구가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기 어려워한다”며 “성교육은 아이의 성적 관심을 인정하는 것에서부터 시작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 초등생 성교육은 언제?
내일여성센터 오신성희 성교육 강사는 “부모가 적절한 성교육 시기를 고민한다”며 “여학생의 경우 생리, 남학생의 경우 몽정을 시작할 때가 가장 좋은 기회”라고 말했다.
보통 초등학교 5, 6학년 때 이런 제2차 성징(性徵)을 경험하면서 아이들의 성적 관심이 부쩍 커지기 때문.
이때 부모의 반응이 중요하다. 생리나 몽정을 시작한 자녀에게 “아휴, 이 지겨운 걸 너도 하게 됐구나”, “앞으로 빨랫거리 늘겠구나”라는 식의 부정적인 말과 표정은 삼가야 한다.
오신 강사는 “부모가 기쁘고 밝은 표정으로 ‘이제 너도 여자(남자)가 됐구나, 참 대견하다’고 한 마디만 해줘도 아이들에게 건전한 성 인식을 심어줄 수 있다”고 강조했다.
아이와 성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기가 불편하다면 성교육 책을 권해주고 부모도 읽어본다.
○ 우리 아이가 음란물을?
인터넷 상의 음란 스팸 메일이나 광고로 인해 음란물을 접하는 초등 고학년생이 많아진 것도 부모의 큰 고민거리다.
자녀가 음란물을 보거나 자위행위를 하는 장면을 목격하면 대부분의 어머니가 ‘가슴이 떨려’ 올바르게 대처하지 못하고 소리를 지르거나 아무 말도 못하고 나와 괘씸하게 여기는 것이 대부분이다.
‘푸른 아우성’ 김애숙 사무국장은 “부모가 ‘공부나 하지 무슨 짓이냐’ 또는 ‘더러운 행동 하지 마라’고 야단치면 아이가 수치심을 느끼고 성에 대해 왜곡된 인식을 갖게 된다”며 “‘불쑥 들어와 미안하다’ 정도로 말하고 나오는 게 좋다“고 조언했다.
그리고 나중에 성 문제에 대해 얘기할 기회를 만든다.
김 사무국장은 “아이도 부모에게 들켜 꾸지람을 두려워하는 상황”이라며 “야단치기보다는 ‘왜 그런 걸 보게 됐니?’라고 물으면서 자연스럽게 성교육을 시작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대한가족보건복지협회 청소년상담실 이정원 소장은 “컴퓨터는 거실 같은 곳에 두고 음란물 차단 프로그램은 반드시 설치하라”고 강조했다.
이 소장은 “부모가 일찌감치 설치하는 것이 좋다”며 “‘엄마, 아빠도 어른이 돼서 음란물을 본 적이 있는데 그건 사실과 다르고 정신적으로도 좋지 않더라’고 교육 기회로 삼으면 더 효과적”이라고 말했다.
또 컴퓨터 채팅 시 이상한 글이 뜨면 그 대화방에서 아예 나오도록 하고 스팸 메일도 발신자를 모르면 읽지 말고 삭제하도록 지도한다.
만약 자녀가 음란물에 심하게 중독됐다고 판단되면 전문 상담을 받는 것도 효과적이다.
○ 성폭력 예방교육
초등 저학년생을 대상으로 한 성폭력 대처교육도 더욱 강조되고 있다.
해바라기 아동센터의 최지영 임상심리전문가는 “아직 판단력이 부족한 초등 고학년생들이 음란물을 접한 후 저학년을 대상으로 성폭력을 저지르는 경우가 늘고 있다”고 말했다.
최 씨는 “아이에게 자기 몸은 소중한 것이라는 사실을 강조하고 다른 사람이 껴안거나 만질 때 ‘좋은 느낌’과 ‘나쁜 느낌’을 구분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 누군가가 몸을 함부로 만지면 어른이라도 똑바로 쳐다보면서 ‘싫어요, 만지지 마세요’라고 말하고 주변 어른에게 알리거나 여의치 않을 때는 도망가도록 한다.
이때 성폭력 피해를 입는 것은 자신의 잘못이 아니라는 점을 명확히 가르치고 그런 일이 있을 때는 부모에게 반드시 말하도록 지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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