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해하지만 모멸감은 감수할 것_by 성지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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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해하지만 모멸감은 감수할 것
Q : 10년째 각방 쓰는 남편과 만난 지 3년 된 유부남 애인 사이에서 …
올해 42살로 28살에 결혼한 남편과 이혼하려고 합니다. 남편은 인격적으로 훌륭한 아빠지만 저와는 모든 게 맞지 않습니다. 육아 공동체로서 동거를 하고 있지만 전자우편으로 의사를 교환하며 각방 생활한 지 10년입니다. 집에서도 함께 식사나 대화는 거의하지 않고 아이에게는 그저 바쁜 엄마, 바쁜 아빠인 양 살았습니다. 그런데 12살된 아들이 왜 엄마는 할아버지댁에 가지 않느냐, 왜 우리 가족은 늘 둘씩만 만나느냐고 가슴 아프게 묻기 시작했습니다. 올해 안식년을 맞는 아빠와 외국유학을 떠나는데 마음의 상처를 최소화하려면 아들에게 어떻게 얘기하는 게 좋을지, 상당 기간 떨어져 있을 엄마로서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조언해 주세요.
고민이 하나 더 있습니다. 3년 남짓 만난 애인이 있습니다. 유부남인데 처음 저를 만날 때는 저와 달리 나쁘지 않은 혼인관계를 유지하는 듯했는데 저를 만나면서 파탄이 났습니다. 2년 가까이 별거를 하고 있으며 지금은 저와 반동거라고 해도 무방할 정도로 가까이 지내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혼은 못하더군요. 별거녀가 물러서지 않고 법률적인 남편의 소유를 굽히지 않는다고 하더군요. 그런데 마음이 여리고 단단하지 못한 사람이라 이혼을 못하는 건 이 남자 탓인 거 같습니다. 이 사람과 반드시 결혼을 하겠다는 건 아닙니다. 다만 저와 함께 지낸 다음 명절 등 가족행사를 별거 중인 아내와 꼭 챙기는 걸 보면서 모멸감이 느껴집니다. 그 남자와 잘 지내고 싶지만 그런 모멸감을 겪고 싶지는 않습니다. 어떻게 해야 할까요?


A 지금 만나시는 애인 분과 결혼을 할 생각은 없다는 말, 자신을 속이는 거 아닐까요? 그 남자가 자신의 가족행사를 (법적 아내와 함께) 꼬박꼬박 챙기는 것을 못 참는다는 건 그 자리가 자기 자리여야 한다는 믿음이 강해서이기 때문이거든요. 아들을 향한 눈물겨운 사연을 먼저 말씀하셨는데도 뒷얘기부터 한 건 질문 전체에서 뒷얘길 더 중요시하고 있음이 확연히 느껴졌기 때문이에요. 자, 이제 당신이 새로 꾸미고 싶어하는 가족 얘기 말고 지금 억지로 이어가는 가족 얘기부터 합시다. 아, 물론 교통사고는 사람보고 나는 것도 아니고 상황 봐가며 나는 것도 아니니 좋은 남편 놔두고 딴 남자와 사랑에 빠진 당신을 도덕적으로 비난할 생각은 없어요. 인생이 그런 거고 그 가능성에 대해선 누구에게나 열려 있는 것이니까요.
문제는 어쨌든 그게 또 뭐 그렇게 자랑할 일은 아니고 아들을 생각하면 엄청 큰 죄를 짓는 건데도 너무 우아하게 처신하려 애쓰신다는 겁니다. 비록 아침 드라마를 찍고 있긴 하지만 손끝에 구정물 한 방울 묻히긴 싫은 거죠. 하긴 인간이 다 똑같죠 뭐. 저 또한 당신과 같은 처지가 된다면 아마 어차피 나쁜 년 된 거 이왕이면 좀 덜 후지고 덜 악당으로 보이는 방법을 찾으려 애쓸 거에요. 인간은 결국 자기가 제일 중요한 법이거든요.
하지만 ‘육아 공동체’로서 결혼생활을 유지해 왔다는 말은 하지 마세요. 한 집에 살면서 대화도 하지 않는 삶을 무려 십 년째 해오셨다면 그건 육아 공동체가 아니라 아동학대 공동체입니다. 열두 살인데 이제 묻기 ‘시작’했다는 건 질문을 시작했을 뿐이지 상처는 오래 곪아 있다는 얘깁니다. 본의 아니게 철이 일찍 들어버린 아이가 자기 딴엔 참아본다고 참다가 이제야 물어본 걸 철없는 엄마는 이제야 아이의 상처를 걱정하기 시작한 거 같아 안타깝네요. ‘상처를 최소화’하는 방법은 없어요. 다만 더 큰 상처가 나는 것을 막자면 자세히 설명해주는 수밖에 없겠네요. 엄마와 아빠가 예전엔 서로 사랑해서 너를 낳았지만 이제는 사랑하지 않는다고, 미안하다고, 하지만 엄마 아빤 너를 여전히 사랑하고 그건 변하지 않을 거라고. 어른들끼리의 사랑은 변하기도 한다고, 그건 너도 크면 알 수 있을 거라고 …, 아이 눈 높이에 맞춰서 최대한 자세히 고해 성사하세요. 연락도 자주 하시고, 그렇게 하는 거 말고는 길이 없네요.
사랑 없이 살아온 그동안의 시간이 너무 억울하고 이제야 운명같은 사랑을 만났는데 그것도 마음대로 되질 않으니 무척 속상하실 겁니다. 아무리 누군가의 어머니라 해도 여자로서의 행복도 중요하니까요. 이해합니다. 하지만 지금 당신은 날 더 사랑한다면서 이혼은 죽어라 안 하고 있는 그 ‘마음 여리신’ 애인 분 때문에 약이 올라 있는 상태여서 말은 굉장히 우아하게 하고 계시지만 맘속은 심한 분탕질을 하고 계신 것 같습니다. 그리고 그 분탕질의 근원은 욕심입니다.


» 오지혜의 오여사상담소
아주 나쁜 엄마도 안 되고 전 남편과도 우아하게 헤어지고 지금 사귀는 유부남 애인도 빨리 저쪽 가족 깨끗이 정리해 버리고 나만 바라봐 주는, 그 모든 걸 어떻게 다 가지려 하시나요? 자식 버리고 만나는 남자에다, 심지어는 한 가정을 파탄시키고 이루려는 사랑인데 그깟 모멸감 정도는 감수해야 하는 거 아닌가요? 게다가 10년을 심리적 이혼상태로 계셨으면서 상대방의 2년 별거를 못 참아 모멸감씩이나 느끼는 당신은 새로운 사랑을 할 자격이 없어 보입니다. 그 ‘별거녀’분께서도 육아공동체를 하고 싶으신가 보죠. 앞으로 8년을 더 기다려야 하실지도 모르겠습니다.

참 근데 그거 아세요? 유부녀들은 사랑에 빠지면 자식도 버리지만 유부남들은 절대로 이혼하지 않는다는 만고의 진리 말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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