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이 주는 위안_by 성지식
[배정원이 말하는 열린 성] 살이 주는 위안
“Sex라는 말의 어원은 Sexus입니다. 이 말은 devide, 즉 ‘나누다’‘분리하다’‘구별하다’란 뜻이지요.”
우리가 섹스를 하는 이유에 대해 설명할 때면 나는 이 신화를 끌어온다.
‘아주 옛날에 인간은 양성동체였다. 남남성, 여여성, 남녀성이 한 몸으로 머리도 두 개, 몸도 두 개, 팔다리는 네 개씩인 몸이 서로 붙어 있었는데 이 인간이란 존재는 너무도 완벽한 행복과 능력을 가진 유쾌한 존재였다고 한다. 이렇게 유능하고 행복하며 완전한 존재는 점점 교만해져서 신들에게 대들기 시작했고 그 신들의 왕인 제우스는 인간을 ‘Sexus’하라는 명령을 내린다. 그렇게 해서 나뉜 남자와 여자는 예전에 한 몸이었을 때의 완전한 능력과 행복, 그리고 즐거운 기억들을 잊지 못한다. 애초에 한 몸이었던 상대를 향해 그리움과 연정, 애틋함, 보고싶음의 애달픈 마음을 가지며, 그를 생각할 때마다 더 외롭고, 고통스러운 존재로서 괴로워하고 다시 그 전의 상태로 돌아가기를 열망한다.
둘로 나뉜 인간들이 가진 그 보고싶음, 외로움, 원망, 질투, 애틋함의 불안전한 감정은 바로 우리가 지금도 그 감정 때문에 행복해 하고 쓸쓸해 하기도 하고 때로 힘겨워 하기도 하는 바로 사랑이라는 감정이다.
우리 인간은 이런 불완전한 감정에서 저 완벽하고 행복한 예전의 상태로 돌아가기를 꿈꾼다. 그것은 바로 사랑하는 이들이 다시 한 몸이 되는 일이며 바로 섹스를 통해서만이 우리는 그 완벽했던 행복의 감정에 도달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는 순전한 나의 말이 아니라 플라톤의 심포지엄이라는 강연에서 빌어온 부분에다 나 나름의 해석을 덧붙인 것이다.
사랑이라는 불완전한 감정을 보다 더 완벽한 상태의 행복함으로 바꾸기 위해 우리는 섹스를 꿈꾸고 섹스를 한다. 하지만 섹스의 또 다른 속성은 잠시 우리가 한 몸이 되는 그 순간에는 완전한 행복과 일체감을 느낄지 몰라도 다시 둘로 나뉘어야 하고 전보다 더 외로워져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도 우리 인간은 그 잠깐이나마 다시 완전한 존재로서 합체되고, 행복한 순간을 느끼기 위해 더 외로워질 것을 알면서도 또다시 섹스를 하려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꼭 사랑과 섹스가 같이 가는가. 유감스럽게도 늘 그렇진 않다. 사랑하지만 섹스하지 않을 수도 있고, 섹스를 하지만 사랑하지 않을 수도 있다.
이것은 인간 각자가 가질 수 있는 섹스의 선택권이며 행복에 대한 다른 해석일 수 있다. 그러나 다시 말하자면 진정한 마음으로 사랑하는 이가 있어 그와 더불어 나의 온 몸과 마음을 다한 섹스를 할 수 있다면 더할 수 없는 행복일 것이다. 그래서 어쩌면 서양보다 동양에서 더 총체적인 성을 이야기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우리 한자의 성(性)은 마음 心과 날 生이 합쳐진 뜻글자이다. 이것은 바로 처음부터 타고난 마음이란 뜻이라고도 하지만 난 몸과 마음이라는 해석을 하곤 한다. 태어나는 것은 곧 몸이기 때문이다. 즉 진정한 性은 온몸과 마음을 함께 나누는 것이며 그것을 사랑하는 이와 나눌 때 더없이 아름다운 것이라고 나는 해석한다. 이러한 목적으로 우리는 섹스 할 때 더없이 상대에게 위안 받으며, 내가 사랑 받을 만한 귀한 사람이라는 느낌으로 자존감의 성취를 경험하곤 한다.
섹스가 우리에게 주는 위안 중에 몸에 대한 부분을 나는 ‘살이 주는 위안’이라는 말로 부른다. 이 살이 주는 위안은 실로 강력한 느낌이고 뿌리칠 수 없는 유혹이며, 내가 사랑 받아야 하는 존재로 살아있다는 느낌이다.
‘살이 주는 위안’이라니?
우리가 외롭고 상처받고 지쳤을 때를 생각해 보자. 그런 기분일 때 어떤 자세로 있는지...
우리는 마음이 힘들 때 어두컴컴한 방에서 침대나 벽에 기대어 무릎을 가슴에 모으고, 얼굴을 무릎에 묻고 있다. 그 자세를 혹자는 우리가 어머니의 태중에 있을 때의 자세라서 그런 자세를 취한다고도 하지만, 심리적으로 피부끼리 많이 접촉할수록 우리는 위안 받는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우리는 놀래거나 슬프거나 하면 얼굴을 싸안고 울기도 한다.
우리가 본능적으로 마음의 위안을 받기 위해 손으로 얼굴을 감싸고 무릎을 감싸 스스로를 위안한다면 섹스가 주는 위안이란 도무지 얼마만한 크기일 것인가. 나도 아닌 남과 온몸을 비비기도 하고 입맞추기도 하고 쓰다듬기도 하며 포옹하기도 하는 섹스가 주는 살의 위안이란 참 대단한 느낌일 것이다. 게다가 그는 나를 사랑한다고까지 하지 않는가. 그래서 섹스를 자주 하는 부부는 남들보다 더 젊어 보인다고도 하고 아름답다고도 하나보다. 그것을 우리는 섹스의 치유효과라고 부른다.
인터넷경향신문 미디어칸 성문화센터 소장
여성신문 제708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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