냄새나 향기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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냄새나 향기나              이미지 #1
영화 [Revolutionary Road]
 
단풍이 떨어지던 늦가을이었다. 이십몇 년 전이던가? 사랑하는 애인과 함께 회사 일을 마친 후 안양 삼막사로 드라이브를 갔다. 바람이 솨 불면 우수수 낙엽이 지는 그림 같은 풍경이었다. 으슥한 곳에 차를 세운 우리는 열심히 아주 열심히 키스를 하고 포옹을 하고 애무를 했다. 몸이 달 대로 단 우리는 마지막 애무를 했다.
 
더 이상 도리가 없었다. 죽어도 카섹스를 못하는 우리는 서로의 흥건한 곳을 손으로만 느꼈다. 미끈미끈 질퍽질퍽 그렇게 감질나는 애무였다. 손이 온통 애액투성이었다. 한바탕 땀을 흘린 후 우리는 다정한 이야기를 나누고 집으로 향했다. 잠시 후 그녀를 내려주고 난 운전을 하다가 이상한 궁금증에 걸렸다. 그녀를 애무하던 손의 냄새가 맡고 싶었다.
 
우웩! 나는 손의 냄새를 맡다가 구역질이 솟구쳤다. 오뉴월 삼복 더위에 무슨 젓갈 썩는 냄새였다. 아니 그건 바다 비린내도 아니고 욕창환자 살 썩는 냄새도 아니고 역한 냄새의 복합체였다. 십 분이 못 되어 또 그 냄새가 궁금했다. 아직도 나려나? 마찬가지였다. 뒷물을 안 한 여자이기로서니 냄새가 그렇게 역할 줄이야. 갑자기 그 여자가 얼굴을 찡그리는 장면이 떠올랐다.
 
오분이 못되어 또 맡았다. 약간 역한 내가 덜하긴 했지만 아직도 났다. 나는 창문을 전부 열고 운전을 했다. 그녀와 헤어진 지 30분은 족히 지난 때쯤 다시 냄새를 맡았다. 아니 이게 웬일이지? 역한 냄새가 사라지고 평소 맡던 향긋한 그녀의 목덜미 향내가 났다. 신기하다.
 
집에 반쯤 와 갈 무렵이 되면서 난 뻔질나게 손 냄새를 맡았다. 아 그 냄새는 그녀의 몸 어느 구석에서도 맡지 못한 향내였다. 어떤 화장품의 향내도 아니었다. 이름 지을 수 없는 향기였다. 어느 꽃의 향기가 그리 요염하고 신비할까. 내가 처음 맡아보는 향내였다. 가슴이 두근거리며 그녀의 온몸이 떠올랐다. 집에 다 올 때까지 나는 줄곧 손을 코에 대고 그 향내에 취해 왔다.
 
아! 그러나 집에 다 오고 주차장에 차를 넣으며 손 냄새를 맡았을 때 그 향내는 없어지고 말았다. 어? 이게 웬일이지? 아무리 손을 꼬아가며 여기저기 맡아도 그 향내는 사라지고 말았다. 순간 나는 허방다리에 빠진 듯 뉘우쳤다.
 
아, 맞아. 향내도 지나치면 역한 것을. 사카린이나 뉴슈가, 신화당도 많이 먹으면 쓴맛인걸. 칡도 처음 씹으면 쓴맛인걸. 조금 먹으면, 오래 씹으면 그리도 달콤한 것이 진할 땐 쓰듯이. 아 냄새나 향기나 그게 그것인 것을 왜 몰랐던가. 더럽고 추한 것, 약과 독, 향기와 독한 냄새 그 모든 것이 받아들이는 내 자세에 달린 것을.
 
아, 더럽고 추한 내 인식의 한계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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